2020/02/22 20:10

이탈리아 반짝여행 (1) 로마 도착 ├ 이탈리아 반짝여행 (2019)

2019년 11월, 짧은 휴가 기간 동안 다녀왔던 이탈리아 여행기.

일정은 이전에 정리했던 대로,

1일차 : 인천-로마행, 저녁 로마 도착
2일차 : 오전 로마 관광, 오후 팔레르모 도착
3일차 : 팔레르모 관광(체팔루)
4일차 : 팔레르모 관광(몬레알레), 저녁 로마 도착
5일차 : 오후까지 로마 관광, 로마-인천행


요렇게다.





1. 로마행 OZ561 탑승기


1) 2019.11 기준 탑승 요약

- 기체 올드하다.
- 최근 예능 프로 있음. 헤헤.
- 방석, 담요, 일회용 슬리퍼, 헤드폰 등등 준다.
- USB 충전 가능. 좌석 아래 콘센트 있음.



- 점심 소불고기 쌈밥 매우 훌륭. 배부른 상태에서 쌈 다 싸먹음.
- 좌석은 저가 항공만큼은 아니나 좁은 편. 앞 사람이 좌석 안제끼길 바랄 뿐.



아래로는 일기장에 적은 것들.


2) 비행 중 심심함

글을 쓴다.
글.

엄청나게 심심하거나 우울하거나 자기 변명을 늘어놓고 싶을 때
나는 그럴 때 주로 글을 썼다.

요새 글이라곤 사업계획서와 개발보고서, 연구노트 정도. 다른 글은 안써진다.
아마도 나는 심심하거나 우울하거나 자기 변명을 늘어놓기엔 너무 크고 자랐나보다.
그럴 시간적 여유도 심적 여유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로마로 가는 이 12시간 비행기의 5시간 45분 즈음에야, 비로소 나는 심심함을 느끼고 펜을 들게 됐다.
나는 무언가를 쓰기 위해 5시간 45분의 심심함이 필요했던 것이다.

떠올려보면 없었다. 5시간 45분 이상의 어떤 여유나 멍한 시간, 지루한 시간들이 말이다.
우울하거나 자기변명할 어떤 극적인 일도 없었다.

평탄할수록 쓰기 어려워진다. 그걸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일기 쓰기도 이렇게 힘든데.



→ 여기까지 쓰고 뭘 쓸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잠들었다. 5시간 45분의 심심함으론 택도 없었던 모양이다.



3) 터뷸런스와 굶주림

노보시비르스크 상공에서 기체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밥 시간인데 너무 하잖아.

아까 라운지에서 먹은 거랑 점심에 먹은 거 다 소화됐는데.
좀 있음 밥 나눠줄 분위기였는데.
우째서 흔들리는가.
나는 배가 고프다.

배가!!!!!



→ 원래 겁이 많아서 기체 흔들리면 무서워하는데 저렇게 적을 정도면 정말 굶주렸던 거다.



터뷸런스 구간 지난 뒤에 이거 먹고 얌전해짐.



4) 언제 내리지

비행기에 탑승한지 10시간 46분이 지났다.
나는 지금 부다페스트 상공을 날고 있다.

알라딘과 라이온킹을 봤다.
2편의 빅뱅이론도 봤다.
아시아나 체조도 했다.

...

1시간 반 정도 남았다.
아시아나 체조를 한 번 더 해야겠다.



→ 아시아나 체조 : 영상으로 따라할 수 있는 기내체조. 하고 나면 몸이 약간 개운해진다.





2. 로마 도착

0.5 하루를 소비하여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한국 여권 프리패스를 하고,
(자동출입국 기계만 지난 뒤 도장 찍으면 된다. 심지어 도장 찍어주는 직원은 개인 통화하면서 대충 찍는다.)

공항 맞은편의 역으로 나가서 로마 시내행 레지오날레(지역 열차)를 탔다.




티켓 가격은 10유로. 근데 지금 사진 보니까 티켓 가격은 8유로에 Fee가 2유로네. 발매 요금을 받나?




열차는 나를 포함해서 한 두 사람만 태우고 텅텅 빈 채로 가다가, 무라텔라 역에서 사람을 많이 태웠다. 거주지역인가 보다. 아저씨들 턱수염 구경하면서 왔다. 댄디하게 생긴 아저씨들이 많이 보여 기분이 좋았다.

나는 오스티엔세(Roma Ostiense)역에서 내렸다.

숙소는 역 바로 근처였는데, 이미 깜깜한 밤인데다가 폭우가 내려 찾기가 어려웠다.

일기장 : 비 옴, 비 맞음, 신발 젖음, 주거지 밀집 지역. 숙소 어디야?

찾다 찾다 안되겠어서 전화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나왔다.





3. Sweet Home Piramide

1) 오스티엔세 기차역 근처, 피라미드 지하철역 근처의 아파트 가정집 개조한 숙소.

주소 : Via Ostiense, 38 E/F, 00154 Roma RM, 이탈리아

입구로 들어가기 전, 주인 아주머니가 명패에 이름 잘 써있지 않냐고, 왜 못 찾냐고 웃었다.




찾을 수 있겠냐!



2) 찾기 어려운 것과는 별개로, 방은 마음에 들었다.

내부 사진을 아래에 첨부한다.




이건 거실.




이건 방 사진.




이건 화장실 사진.

한줄 요약 : Clean and Cozy



3) 이 작은 숙소의 주인 아주머니는 친절하고 웃음 많은 이탈리아인이다.

체크인 하는데 웰컴 캔디를 받았다.
원래는 인당 1개씩인데 2인실을 혼자 쓰게 해서 미안하다며 2개를 줬다. (내가 혼자 온 건데!?)
조식은 근처 카페에서 먹으면 되는데 이탈리안 식이라 미안하다고 했다. (여긴 이탈리안데!?)
로마시에서 걷는 세금 3.5유로가 있는데 너무나 미안하다고 연거푸 말했다. (아줌마 잘못이 아닌데!?)

뭐 이렇게 미안한 게 많아?

일단 미안할 필요 없다고, 그 세금이 아줌마 주머니로 안들어가는 거 안다고 말하니까 고마워했다.
그 외의 것들도 나는 완전 괜찮다고 말하자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로마에 대해 설명해주려고 하길래, 로마 여러 번 왔었다고, 잘 안다고 하니까 퍼펙트를 외치며 기뻐했다.

까다롭지 않은 숙박객이라 고마웠는지, 다음에 숙박업체로 예약걸지 말고 개인적으로 연락하면 숙박비 싸게 해주고 세금도 안내게 해준다고 했다. 얼마냐니까 15유로라는데 아무래도 50유로 발음을 잘못한 것 같다. 방 1개가 15유로일리 없지.



4) 내가 묵기 전날, 어떤 숙박객이 숙소 아파트 현관키를 고장내고 갔단다. 키를 자물쇠 부분에 넣고 부러뜨렸다고.




내가 심심한 위로를 표하자 남의 일이 아니라며 날 아파트 현관까지 데려가더니 문 여는 연습을 시켰다.

나는 주인 아주머니의 지도 하에 5번의 문 여는 훈련을 받았고, 그동안 5명의 주민들이 내가 연 문을 고맙다 하며 지나갔다. 더 이상 문지기 역할은 하고 싶지 않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나는 지성인이고 문명인이라 더 이상의 훈련은 필요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고, 그녀는 내 어깨를 감싸안으며 잘했다고 했다.

30대 enat, 현관문 잘 열어서 칭찬 받다.

주인 아주머니가 잠깐 밖에 다녀온다고 하길래 바닥에 놓아둔 우산을 집어줬는데, 우산이 자동으로 펴지며 사방으로 빗방울이 튀었다. 나는 아무 짓도 안했다고, 그냥 우산을 집어들었는데 이게 자동으로 펴졌다고 말했고, 아주머니는 쓸쓸한 표정으로 "그 우산도 숙박객이 고장내놓고 갔다"고 했다.

도대체 이 숙소에 어떤 숙박객들이 다녀간 거야...





4. 저녁과 간식

빗줄기가 좀 얇아진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주변에서 허기를 달래보자.


1) Alice Pizza (Via Ostiense, 48, 00154 Roma RM, 이탈리아)

숙소 근처에 있던 피자집.




외관이 예뻐서 들어갔다.




추천 받아서 치즈+페퍼맛을 먹었는데 좀 짰다.
근데 내가 원채 후추맛을 좋아하는지라 환장하고 먹었다.

조각 2개째 되니까 물 많이 먹힘. 원래 마실 거 잘 안사는데 물을 사버렸다.

피자 2.5유로, 물 1유로.


2) Gelateria La Romana (Via Ostiense, 48, 00199 Roma RM, 이탈리아)

앨리스 피자 바로 옆에 있던 젤라또 가게.



여기도 외관이 예뻐서 들어갔다.




직원들은 하나같이 친절했고 위에 생크림을 올려주는 젤라또도 완전 맛있었다.
피스타치오는 사랑이다. 다른 맛도 맛있었음.

젤라또 3유로.





5. 밤의 콜로세움

날씨가 많이 개어 콜로세움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있는 피라미드 역에서 콜로세오 역까지는 단 두 정거장.

메트로를 타러 갔다.




피라미드 메트로 역 앞에는 작은 피라미드가 하나 서 있다. 역 이름의 유래가 되는 유적이다.

오리지널 대형 피라미드가 그러하듯 이것도 무덤 용도고, 고대 로마에서 이집트 영향을 받아 피라미드 무덤 양식이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남은 피라미드는 이 '세스티우스의 피라미드'가 유일하다고.

일부러 보러 갈 정도의 규모는 아니고, 숙소 근처, 메트로 근처라 지나가면서 슬쩍 봤다.




피라미드 메트로 역으로 들어왔다.

메트로 역에서 데이트 끝나고 헤어지는 커플을 보았다.
여자는 지하철을 타고, 남자는 역에 남았다. 주변 공기에 진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학생 때 생각이 났다.




콜로세오 역에 내려 포리 임페리알리 거리로 나오자 사방이 공사중이었다.
지난 번 (2018) 로마 방문 때 묵었던 요 근방 숙소를 잡으려고 하다가 동선 생각해서 말았는데, 딴데 잡길 잘했다.

콜로세움 근방을 산책했다. 로마에 왔으니 들려주는 게 예의겠지 하는 마음으로.







콜로세움은 역시 밤 산책이다.

낮에는 단체 관광객들이 많아 인파에 질리고 요란하고 시끄러운데, 밤에는 그런 게 없다. 이미 낮에 한 번 봤고 내부에 들어갈 게 아니면, 차분한 밤 산책을 추천한다. 특히 요 근방은 관광지 of 관광지라 경찰차가 수시로 돌기 때문에 안전한 축에 속한다. 숙소를 이 근처로 잡아도 좋음.

당시(2019.11)엔 공사 판넬이 많아 감흥이 좀 떨어지긴 했는데. 요샌 어떨지 모르겠다.





6. 귀가길

산책을 마쳐갈 즈음, 비가 다시 오기 시작했다.





아까 역에서 메트로 공사 때문에 막차 시간이 당겨지고 대체 버스를 운영한다는 안내문을 봤었다. 안내문에선 2019.09.09 ~ 2019.12.07까지라 이미 끝났겠다. 이탈리아 공사라서 연장됐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 표지판에 나온 지도대로 길을 찾아가자 대체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곧 도착한 버스를 타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메트로보다 숙소에 더 가깝게 내려줬다. 땡큐한 일이다.

숙소에 들어갔더니 주인 아주머니는 자기네 집에 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내 방 침대 위에서 내일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딱히 생각나는게 없어서 그냥 잠들었다.




로마에서의 한나절 편에서 계속!






덧글

  • 라비안로즈 2020/02/22 20:52 # 답글

    우리나라 여권의 위대함인가요.. 아님 농땡이 피는 직원인가요 ㅎㅎㅎㅎ 통화하면서 대충 보고 찍어줬다니
  • enat 2020/03/01 00:17 #

    아마도 둘 다인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한국 여권도 유럽에 자동출입국 해놔서 대단쓰한데 직원도 '나는 더욱 더 농땡이 피우겠다'는 마인드였어서 ㅋㅋㅋ
  • 라비안로즈 2020/03/01 01:34 #

    근데 이번 3월말에 코타로 놀러가기로 비행기표 예약했는데.. ㅜㅜ 입국거절.... 헐...입니다 ㅜㅜㅜㅜㅜ
  • enat 2020/03/06 10:35 #

    아이구 ㅠㅠ 여기저기 주변에서도 여행취소 얘기 들려오던데 라비안로즈님께서도 ㅠㅠ... 비행기 환불 100% 되겠죠? ㅠㅠ
  • 우레 2020/02/22 22:03 # 삭제 답글

    드디어 로마 이야기 시작하셨네요. 목빠지게 기다리다가 약간 길어졌습니다. ㅎㅎ
  • enat 2020/03/01 00:18 #

    안대에에!!! 이런 여행잡문을 기다리시느라 목이 빠져버리셨어... ㅠㅠ
    도로 넣어드립니다... 이케이케...
  • 타마 2020/02/25 16:59 # 답글

    의문의 문지기 체험에서 웃었네요 ㅋㅋ
  • enat 2020/03/01 00:19 #

    맹한 눈으로
    .............응? ............응!??
    거리며 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어요....
  • 이글루스 알리미 2020/02/28 08:03 # 답글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의 소중한 포스팅이 02월 28일 줌(http://zum.com) 메인의 [여행] 영역에 게재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zum 메인 페이지 > 뉴스 하단의 여행탭에 게재된 회원님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enat 2020/03/01 00:20 #

    감사합니다
  • blue snow 2020/03/06 12:45 # 답글

    오늘 읽게됐는데 너무 즐겁게 잘 읽었어요..!! :) 저 여행할 때 생각도 나고 ㅎㅎ추억돋았습니당 헤헤 그리고 ㅋㅋㅋㅋ문지기 ㅋㅋㅋㅋㅋ넘 귀여우신 것 같아요.
  • enat 2020/03/06 20:59 #

    추억을 떠올리실 계기가 되었다니 기쁩니다~ 덧글 감사합니다!
    그 이후로도 얼마나 많은 여행자들이 문지기가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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