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3 07:49

코시국 괌여행 (4) 사랑의 절벽 └ 코시국 괌여행 (2021)

높은 곳, 탁 트인 곳, 멀리까지 보이는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행지에 가면 전망대를 꼭 찾는다. 사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전망 좋은 곳은 대개 적의 침입을 확인하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위치이니, 인간의 유전자에는 먼 옛날부터 그런 곳을 좋아하라는 명령어가 새겨진 걸지도 모른다.

선조들의 생존 본능을 따라 뷰 맛집인 사랑의 절벽에 갔다. 사랑의 절벽은 괌을 대표하는 전망대다.





위치는 투몬 해변의 끝자락.

마이크로네시아 몰에서 쇼핑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7788 한인 택시를 불러서 이동했다.

마이크로네시아 몰 >> 사랑의 절벽 >> 힐튼 리조트까지, 택시비 46달러. 기사님께서 넘 친절하셔서 1달러 더 팁으로 드렸다.

택시기사님께서 내려서 사진 찍어준다고 하셨는데 (특별한 건 아니고 여길 택시로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매번 사진사를 자처한다고 하셨다) 나는 혼자 있고 싶어서 (누가 옆에 있으면 상대를 더 신경쓰는 피곤한 타입이라 혼자가 편하다) 죄송하지만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기사님께서 사실 자기도 더운 거 싫어하는데 잘됐다고 기뻐하시는 거였다. 주차장에서 에어컨 쐬며 쉬고 있을 테니 다녀오라고.

예전엔 받지 않아도 괜찮을 호의를 거절 못해서 쌍방이 불편한 적이 많았는데 요새는 그게 가능해져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나도 편하게 둘러보고 기사님도 편하게 휴식을 취하셨다. 거절하길 잘했어.





그나저나 '사랑의 절벽'이라니, 이름 참 예쁨.

그런 이름이 지어진 이유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 괌의 원주민인 차모로족 족장의 딸이 스페인 장교와의 정략결혼을 피해 연인과 함께 절벽에서 뛰어내렸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절벽은 왜 다들 뛰어내린담. 흑흑.

여튼 그 덕에 절벽 내 전망대에는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조형물들이 많다.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직전, 서로의 머리카락을 묶고 키스를 나누는 연인상.

저 거대한 연인상은 2002년도 즈음 태풍 때문에 한번 박살이 났었는데, 10여년 뒤 한 사업가가 자신의 연인을 위해 고철을 찾아 수리한 뒤 둘의 결혼기념일에 되돌려놨다고 한다.

절벽에서 뛰어내린 연인 이야기보다 이쪽이 더 로맨틱한 걸...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사랑은 역시 최고시다.





혼자서 요런 사진 한 장 찍고.






요런 사진도 한 장 찍고.

어디서 찍든 모자에 자연스레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음. 우리 모두 바다 앞에선 좀 감상적이게 되어버리잖아요. 포카리 스웨트가 되어버린다고!





포카포카한 마음으로 입장료인 3달러를 내고 전망대 위로 올라갔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끝없는 바다에 속이 다 후련해졌다.

이렇게 드넓은 곳에 갔으니 좀 버리고 와야겠다. 내 고집, 아집, 절망, 비탄, 괴로움, 피해의식, 그 외 일반쓰레기로 분류될 만한 많은 감정들. 나는 마음 속에 쌓아놓고 묵혀둔 쓰레기 봉다리들을 모아 저 바다에 던져버렸다.

에잇!






이것저것 버리고 났더니 마음무게가 한결 가벼워진 enat입니당.

몸무게도 가벼워지면 좋을텐데.








마저 전망대를 돌며 바다를 감상하는데, 슬픈 눈을 한 두 남자가 전망대에 올라서는 걸 보았다. 둘은 나란히 서서 바다를 보다가, 서로의 검지손가락을 난간에서 살며시 포갰다.

어!? 내가 지금 이 광경을 봐도 되는 건가? 엄청 중요한 장면인 것 같은데!

그쪽 난간의 공기만 어마어마하게 아련해서 방해가 될까봐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뭐야뭐야. 왤케 분위기 애처롭고 사연있어. 설마 머리카락 묶고 뛰어내리진 않겠지. 뒤에서 두근두근하며 몰래 훔쳐봤지만 뛰어내릴 것 같진 않았다. 뛰어내리기는커녕 점차 핑크빛으로 바뀌는 것 같은데.

어... 그냥 자리를 비켜줬다.





전망대 아래는 자물쇠로 빼곡.






알록달록한 배경이 좋아서 마지막으로 한 장 찰칵하고 나왔다.








나도 좀 멜로 눈깔하고 지나간 사랑들을 떠올리며 바닷바람 더 쐴까 했지만, 그러기엔 날이 너무 덥고 태양은 이글거렸다. 어휴 땀나.

나는 손부채로 얼굴 주변을 부채질하며 택시로 돌아왔다. 택시로 돌아오니 기사님께서 환한 얼굴로 '덕분에 밀린 전화도 다 하고 수다도 떨었어요! 우리 고객님이 나 더울까봐 차에서 쉬시라고 해줬다고 자랑도 해찌용!'이라며 반겨주시는 거였다. 요새 하도 손님이 없어서 사랑의 절벽까지 콜 받은 것 자체가 자랑이라나. 여튼 기사님께서 어화둥둥 해주시는 덕분에 기분 좋게 리조트로 돌아왔다.






리조트 테라스에서 께속!



덧글

  • Heb614 2021/11/03 14:19 # 답글

    우와 진짜 개부럽네요
  • enat 2021/11/05 08:41 #

    개재미지게 다녀왔습니다! 또 가고 싶네요!
  • 2021/11/03 20:2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21/11/05 08:4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타누키 2021/11/04 13:12 # 답글

    멋진 곳이네요~ 가리비같은 조개껍질인줄 알았는데 하트명패였군요. ㅎㅎ
    근데 머리카락을 묶다니 ㅎㄷㄷ
  • enat 2021/11/05 08:50 #

    자물쇠랑 명패 세트로 기념품 파는 곳에서 팔고 있더라고요~! 흘끗 보니 조개껍질처럼도 보이네요 ㅋㅋㅋ
    전설 상에선 머리카락 묶었다고 하는데... 그게... 묶이나? 매듭 풀리지 않나? 하고 생각했었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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