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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시국 괌여행 (6) 한국인이 싫은 라멘집과 로스의 타미힐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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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후엔 해변에서 잔뜩 놀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즈음, 객실로 돌아와 맥주를 한 캔 깠다. 그러다가 잠들었다.

일어나니 하늘은 벌써 한밤중이었다. 10월 말의 괌은 7시만 되어도 밤 10시마냥 캄캄했다. 당연한가. 절기상 좀 있으면 입동이니까. 날씨가 더워서 여름으로 착각할 뿐.

저녁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며 구글맵을 보다가,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라멘집이 있는 걸 발견했다. 뭔가 포장마차처럼 꾸며놓은 감수성 넘치는 가게였다. 구글 평점도 높다. 리뷰 사진을 보자마자 갑자기 국물이 훅 하고 땡겼다. 좋았어, 오늘 저녁은 라멘이다!

좀 꾸밀까 하다가 어차피 어두워서 안보이겠지 싶어서 쌩얼에 마스크를 착용했다. 목 늘어난 티셔츠에 슬리퍼 질질 끌며 밖으로 나갔다.





2.

그 라멘집, 지도로 봤을 땐 가까웠는데, 막상 걸으니 거리가 꽤 되는 것 같다. 게다가 어제 프로아를 거쳐 K-마트를 갔던 길과는 다르게 많이 음침했다. 상가 건물도 없고, 가로등도 적고, 나무와 담벼락만 보이는 언덕길이고. 그냥 택시 타고 쇼핑몰 가서 밥 먹을 걸 그랬다. 하지만 벌써 반 이상 걸어왔으니 이제 와서 택시 부르기엔 좀 아깝다. 그래서 참고 걸었다.

흥얼거리며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는데, 옆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뭐야?

옆을 쳐다보니 어마어마하게 큰 개가 날 보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누런 색이었는데 군데군데 하얀 얼룩이 진, 거대한 개였다. 달려들어서 덮치면 내가 깔릴 것 같다. 그 상태로 목덜미 물리면 죽을 것 같다. 그런 무시무시한 생각이 드는 개였다. 이걸 그냥 개라고 표현해도 되나? 내가 아는 개들은 이렇지 않던데. 정말인지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는 놈이었다. 그런 녀석이 선량하고 체구 작은 동양인 소녀(나!)를 보고 낮게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개쫄았다. 침을 꿀꺽 삼켰다. 근데 그 개...

목줄이 없다.

나는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내가 자리를 벗어나는 것보다 그 개가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게 더 빨랐다. 등 뒤에서 침이 뚝뚝 떨어지는 개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이런 미친!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음역대의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차도에 뛰어들었다. 마침 통행하는 차량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단숨에 차도를 건너 반대편 인도까지 달려갔다. 슬쩍 뒤를 봤더니 개도 차도를 건너려 한다. 세상에, 날 쫓아오려나봐! 비명은 계속 됐다. 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악!

내 비명소리를 들었는지, 웃통 벗은 아저씨가 한 건물에서 뛰쳐나와 개를 불렀다. 개는 차도의 절반까지 건넜다가, 아저씨 목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뛰어갔다. 저 아저씨가 주인인가 보다. 아저씨는 개의 목덜미를 잡고 껄껄 웃으며 내게 괜찮다는 수신호를 보낸 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웃지마! 나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나한테 총이 있었다면 그 개의 머리통을 날려버렸을거야!

이게 뭔 상황인가 싶었지만 개도 개주인도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다리는 풀렸고 하늘은 노랗다. 건물 안으로 쫓아가서 개주인한테 욕이라도 퍼부을까 싶었지만 아까 행색을 보아선 개주인도 정상인 같아보이진 않았다. 괜히 뭐라고 했다가 저 여자 물어서 죽여버리라고 개 풀어놓는 거 아냐? 어휴, 그냥 빨리 도망가야겠다. 나는 허둥지둥 그 건물 앞을 벗어났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택시를 탔어야 했다. 그깟 몇 십불 아끼겠다고 걷다가 목숨을 건 뜀박질을 하다니... 역시 택시를 탔어야 했다.





3.

목표했던 라멘집에 도착했다. 이름은 Max Ramen & Yakisoba.



빈 공터에 붉은 조명으로 꾸며진 가건축물 한 채가 있었고, 일본인 할아버지가 그 내부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가건물 앞에는 검은 천막이 쳐져 있었고, 피크닉 테이블 두어 개가 놓여 있었다.

선인장? 알로에? 하여간 뭔가 뾰쪽한 식물들이 천막 안쪽에서 자라고 있었다. 할아버지 취미신가보다.



라멘집 메뉴.

잘 보니까 메뉴에 '선인장 라멘'도 있다. 직접 키운 선인장을 넣어주는 라멘인가? 특이하다.

주문하기 위해 가건축물 창구 앞에 섰다. 곧 일본인 할아버지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일본인이니까 일본어로 말하면 좋아하려나? 나는 일본어로 인사했고, 일본어로 주문했다. 할아버지는 내 일본어를 듣고 날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는지, 일본어로 신나게 뭐라뭐라 길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빠르고 긴 문장은 못 알아듣겠는걸. 그래서 웃으면서 사실 일본어는 잘 못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눈을 찡그리더니 예방접종증명서를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가방에서 예방접종증명서를 꺼내어 보여줬다.

할아버지 : 이 증명서는 일본에서 받은 거지?
나 : 응? 아니, 한국에서 받았어.

그랬더니 놀란 얼굴로 내게 한국인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인이라고 일본어로 답했더니, 갑자기 오케이, 하곤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어라? 태도가 돌변한 것 같은데?

나는 눈을 꿈뻑꿈뻑하다가 자리에 앉아 음식을 기다렸다. 곧이어 차슈라멘(8달러)이 나왔다. 할아버지는 창구로 그릇을 주며 쟁반과 젓가락은 저기에 있으니 알아서 챙겨 먹으라고 한 뒤 다시 안쪽으로 쏙 들어갔다.

왠지 아까랑 좀 다른 분위기인 걸. 처음에 일본어로 대화 나눌 땐 상냥하고 친절했는데. 지금은 냉랭하기 그지 없다. 내가 뭔가 실례되는 이야기를 했나?



가게 주인이 눈치를 주니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래도 돈 내고 산 거고 배는 고팠으니 꾸역꾸역 몇 젓가락 먹었다.

적당히 먹고 퇴식구에 그릇을 두는데, 할아버지가 창문을 통해 슬쩍 나를 내려다봤다. 잘 가라고 인사하려나? 나는 또 멍청한 얼굴로 헤죽 웃으며 일본어로 말했다. 맛있게 먹었고 좋은 밤 되세요. 근데 맛있게 먹었다는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오케이, 바이, 하더니 다시 쏙 들어가는 거였다. 어... 바쁜가?

찝찝한 기분으로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때마침 다른 서양인 손님들이 가게로 들어왔다. 그랬더니 내게는 오케이, 오케이만 하던 그 일본인 할아버지가, 창구로 나와 밝게 웃으며 그 손님들과 농담을 주고 받는 거였다...

기분이...

...미묘하게 나빠!

저러니까 꼭 일부러 나 들으라고 저렇게 큰 소리로 농담하고 인사하는 것 같잖아!

이게 참, 뭔가 무시당한 것 같고 기분 나쁜 대접을 받은 것 같긴 한데, 사실 그건 네 착각이라고 말하면 끝날, 그런 미묘한 불쾌함이 있었다. 그치만 그 미묘함이 여러 번 반복됐으니 그건 내 착각이 아닐 거다.

아까 한국인이라고 말했을 때부터 태도가 변했는데, 혹시 내가 한국인이라서 저러는 걸까? 그런 이유라면 진짜 속 좁은 거다... 진짜 그 이유인가? 진짜? 나는 믿을 수 없어서 허허허 웃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을 양반이, 본인 감정을 비즈니스에 섞다니. 장사하는데 왜 국적을 따지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그냥 잊기로 했다. 금전적인 손해를 본 것은 아니니.

이제부터 뭘 할까 고민이나 해야지.



 

4.

오늘 저녁은 어쩐지 전반적으로 불운이 따른다. 개한테 쫓기질 않나, 한국인이라고 무시받질 않나. 무엇보다도 저녁 식사가 별로였다. 미쿡 땅에서 라멘이라니. 그냥 프로아 가서 고기나 먹을 걸.

그치만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밤이야말로 쇼핑 각이로다. 이런 날 쇼핑하면 뭔가 운이 따른다. 언럭키한 상황 다음엔 럭키가 따라오는 법이지.



그래서 쇼핑을 하러 갔다. 마침 그 라멘집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GPO(괌 프리미엄 아울렛)가 있어서 또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미 시간은 밤 9시 반. 많은 쇼핑 상점들이 문을 닫았지만, ROSS만큼은 열려 있었다. 역시 로스다. 밤 12시까지 한댔나.



GPO의 로스는 낮에 다녀왔던 마이크로네시아몰의 로스보다 더 볼만한 게 많았다. 아까 사랑의 절벽 갈 때 탔던 택시 기사님께서 GPO 로스는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셨는데, 이유가 있었다.

나는 로스에서 늦은 시간까지 구석구석 둘러보며 쇼핑을 즐겼고, 가방 2개와 지갑 1개를 건졌다.



1) 타미힐피거 백팩, 34.99불.
2) 타미힐피거 숄더백, 32.99불.
3) 타미힐피거 지갑, 16.99불.

어쩌다보니 타미힐피거만 사게 됐다. 노린 건 아니었는데... 튼실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제품을 고르다보니 저렇게 고르게 됐다. 다른 브랜드 제품들은 여러 개씩 같이 걸려있는데 타미힐피거는 구석에 하나씩만 숨어있길래 고른 거기도 하다. 할인매장에 하나만 남아있다고? 인기가 많은 제품인가봐! 이런 건 사야지.

사실 내가 브랜드를 잘 몰라서 친구한테 카톡으로 물어보니 저렴하게 잘 샀다고 했다. 마지막 날 가이드 아저씨한테도 물어봤더니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오! 럭키했군!

그렇게 건져온 타미힐피거 백팩과 지갑은 한국 돌아와서 주구장창 쓰고 있다. 튼튼하고 편해서 사길 잘했다 싶다. 숄더백은 무난하니 손에 챡 하고 잡히는 맛이 있는지라 막 들고 다닐 때 좋더라. 아주 잘 샀어!

쇼핑을 끝내니 10시 반이었다. 늦은 시간이고, 짐도 많고. 걸어서는 못 가겠다. 7788 택시를 불러서 힐튼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식사 뻘짓부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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